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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예루살렘 왕국 군대의 규율

by Kartoffel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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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년 다마스쿠스의 귀족이자 보스트럼 시의 총독인 탄타이스(Tantais)가 반란을 일으킨 뒤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 3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왕의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 도시가 점령당하고 군대는 적지 한가운데 고립된 상황.]

이튿날 새벽, 누르 앗딘이 앞에서 언급한 도시에서 출전했고, 수많은 투르크인들을 이끌고 적들의 군대에 합류했다. 그의 장인(다마스쿠스 총독 무인 앗딘 우누르)이 그에게 지원을 요청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계획했던 대로 복귀 행군을 시작했다. 투르크인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차리자마자 공격을 시작했고, 큰 함성을 지르며 후퇴를 저지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우리 백성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바로 그 어려움들이 그들의 용기를 강화시켰다. 그들은 적의 대열을 돌파했고, 비록 큰 위기를 겪으며 많은 목숨을 희생시켰지만, 계속 길을 헤쳐나갔다.

기독교 군대에 속한 모든 전사자들의 시신을 낙타나 다른 가축 위에 올려서 운반하라는 명령이 모든 부대에 내려졌다. 우리 군대가 입은 피해를 알고 적의 사기가 오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부상자들 역시 단 한 명의 기독교인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말에 타서 행군해야 했다. 이들은 싸울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더라도 싸울 수 있는 병력처럼 보이게끔 검을 들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화살비와 끊임없는 습격, 고통스러운 갈증과 먼지와 더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기독교인 사망자나 부상자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적들의 지혜로운 지휘관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므로 이들 종족은 철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한 그러한 지속적인 압박을 그렇게 끈질기게 버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자, 적들은 다른 전술을 시도했다. 그 지역은 빽빽하게 자란 가시덤불과 마른 엉겅퀴와 그밖의 다른 잡초들, 오래된 나무토막들, 그리고 당시 수확할 시기가 온 농작물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은 여기에 불을 질렀고, 얼마 안 있어 강한 바람이 그것을 우리 쪽으로 맹렬하게 운반했다. 이제 퍼져나가는 불길과 짙은 연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은 두 배가 되었다.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덕망 있는 나사렛 대주교 로베르에게 일제히 눈물로 간청했다.

"주교님,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손에 들고 계신 우리의 구세주이자 창조주가 매달렸다고 믿어지는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해주십시오. 우리는 이런 불행을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바람에 날려온 연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과 몸은 마치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는 대장장이처럼 까맣게 뒤덮여 있었고, 여름의 더위와 갈증에 더해진 불의 열기가 그들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증가시켰다.

주님의 총애를 받는 대주교는 그들의 눈물과 애원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맹렬한 기세로 몰려오는 불길을 향해 구원의 십자가를 들어 보이며 하늘로부터의 도움을 기원했다.

곧바로 주님의 은총이 내려졌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연기와 불꽃을 적들에게 날려 보낸 것이다. 그리하여 투르크인들이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 준비한 간계가 그들 자신의 파멸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 경이로운 기적을 보고 놀라서 멈춰서 있었다. 오직 기독교도들의 신앙만이 기도를 통해 주 하느님으로부터 그렇게 신속한 응답을 받을 수 있으리라.

적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온 위험에 정신이 팔린 동안 우리 군대는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네 명의 저명한 아랍인 족장들과 그들의 군대가 이 전쟁에 참가했다. 그들은 한 형제였고, 강하고 명성 높은 아랍인 태수 모렐(Morel)의 아들들이었다. 이 부대는 매우 집요하고 기세 좋게 우리 군대의 측면을 공격했다.

그러나 우리 군사들은 감히 그들과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군율을 어기고 대열을 무너뜨리면 정해진 위치에서 이탈한 자로서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편에 있는 투르크인(전 보스트럼 총독 탄타이스)의 수행단에는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고 싶어한 어떤 기사가 있었다. 그는 군율과 목숨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용기를 내어 말에 박차를 가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들고 있던 창을 부하들에 둘러싸여 있는 네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던지고는, 곧바로 달려들어 검으로 찔러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우리 대열로 돌아왔다.

죽은 족장의 시신 주위로 엄청나게 많은 적군이 몰려들었다. 그가 이미 자신의 불운한 영혼을 떠나보낸 것이 분명해지자 군중들은 탄식을 내뱉고 울음을 터뜨리며 크나큰 슬픔을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 백성들은 크게 기뻐했고, 그러한 위험에 뛰어들어 영원히 찬양받을 업적을 남긴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그는 우리 말을 모르고 칙령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율을 어긴 것에 대해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외국인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군율에 반하는 행동을 했지만 명령이 내려진 것을 몰랐다는 이유로 자비롭게 사면되었고, 그의 용감한 행동은 옳기 때문이 아니라 결과 때문에 칭찬받을 만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해서 적의 대열 한쪽이 무너졌다. 아군은 이제 더 넓은 대열로 행군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므로 넓은 공간에서 그들이 이전까지 겪은 곤경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기욤 드 티레, '바다 너머에서 행해진 일의 역사' (Historia rerum in partibus transmarinis gestarum) Trans. Emily Atwater Babcock & C. Krey, 'A history of deeds done beyond the sea'


https://gall.dcinside.com/m/ttwar/1114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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