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쟁1 1914년,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후 통첩을 대부분 수용했는가? 베오그라드에서 숙명론 분위기를 쫓아버리고 최후통첩의 요구에 순응해 전쟁을 피해보려던 각료들의 마음을 돌린 것은 러시아에서 들려온 소식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강경해지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 각료들은 세르비아의 주권을 양보하지 않는 선에서 오스트리아의 요구에 최대한 순응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답변서를 다듬는 데 엄청난 공을 들였다. 세르비아의 답변서는 지저분해 보였을지 몰라도 외교적 얼버무림의 걸작이었다. 답변서는 자신만만한 자화자찬으로 시작했다. 다시말해 세르비아 정부가 발칸전쟁 기간에 여러 차례 온건하고 평화적인 태도를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사적 개인들의 행동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언론이나 '협회들의 평화로운 업무'를 직접 통제하지 않는 까닭에 빈에서 제기한 혐의에 놀라고 고통받.. 2024. 3. 3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