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中 '징병제와 모병제 사이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사회 특권층의 젊은이들은 군 복무를 기피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경우 1956년 졸업생 750명 가운데 과반수가 넘는 450명이 군에 입대했다. 2006년에는 졸업생 1108명 가운데 입대한 사람은 고장 9명에 그쳤다. 다른 일류 대학이나 미국 수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고 의회 의원 가운데 자녀가 군에 입대한 경우는 2%에 불과하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랭글은 “이 나라를 위해 이라크에서 무기를 든 사람들 대다수가 도심과 시골의 빈민 지역 출신이며, 이들에게는 군 복무 대가인 보너스 4만 달러와 수천 달러에 해당하는 교육 혜택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저당 잡히고 얻는 이런 혜택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라고 말 한다.
"오늘날 미군은 용병의 색채가 짙다." - 데이비드 M. 케네디
인구비율로 볼 때 오늘날의 현역군인수는 2차대전의 4퍼센트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정책 입안자들이 광범위하고 진지한 사회적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비교적 쉽사리 국가를 전쟁으로 내몬다. 전쟁에서 땀 한방울 흘리지 않는 사회의 이름을 걸고 역사상 가장 막강한 병력이 전투에 투입될 수 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자원군은 거의 모든 미국인에게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책임을 면제해준다. 하지만 같이 나눠야 할 희생을 면제해주면 정치적 책임의식이 약화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군복무에는 어떤 식으로든 눈곱만큼도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엄청나게 많은 미국인이 같은 국민인 소외계층 사람들을 고용해 가장 위험한 일을 시켜놓고 피 한방울 흘리지 않은 채 눈 하나 꿈쩍 않고 자기 일을 계속한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시민의 의무를 팔릴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자유의 가치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깍아내린다고 주장한다.
"공공서비스가 시민의 으뜸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것을 사람이 아닌 돈으로 해결하려하는 순간 국가의 몰락이 가까워온다 마땅히 전쟁터로 진군해야 할 때 사람들은 군대에 돈을 지불하고 집에 앉아 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국가라면 시민은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하지 돈을 들여 하지 않는다. 돈으로 의무를 면제받기는커녕 돈을 들여서라도 의무를 직접 이행할 특권을 얻으려 할 것이다."
우리는 모병을 시장에 떠맡겨놓고도 군 복무를 애국심과 시민의 미덕이라는 낡은 개념과 분리하지 못한다.